대영평납은 '대~단한 영화 평론가 납셨네~' 의 줄임말입니다.
최근 국내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22년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에 대해 감히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 영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 포함.
절대 관람 이전에 보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만 영화를 잘 이해하고 싶으신 분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내용도 제법 들어가 있어, 전혀 공감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예고편 등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공개된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추가 : 이 글은 카테고리상 평론이라고 되어있지만, 단지 제가 느낀 바를 정리하고 싶어 쓴 글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때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쓸쓸한 장소들' 에 대한 조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뒷문' 은 '폐허' 에 생긴다.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가 누르고 있던 장소... 그런 것인가, 싶었는데.
사실, 작중 뒷문이 생긴 모든 장소는 큰 지진이 났던 장소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보니 저는 그냥 시간이 흘러가며 변하고 잊혀지는 그런 장소들에 대해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들은 모두 '재해로 인해' 사람이 살지 않게 된 폐허,
혹은 그로 인한 인구감소로 주민이 적어진, 그러다가 점점 잊혀지는 그런 장소들이었죠.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감상 차이가 매우 심했습니다.
지진이라는 재해에 대해 꽤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저도 처음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을 알았던 겁니다.
워낙 기대하고 있던 영화여서 관련된 정보를 일부러 피하고 또 피했기 때문에...
처음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이것저것 찾기 시작했습니다.
큐슈, 에히메, 고베, 도쿄, 도호쿠, 3월 11일...
볼 수록 눈물이 나는 시점은 앞으로 당겨지고, 영화를 보기 힘들어지는 이상한 기분.
다회차를 하면서 아릿한 감정이 들던 장면.
치카 역시 재해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녀의 중학교는 재해로 인해 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무사해 보이지만, 그녀의 추억이나 다른 어떤 무언가를 그 장소에 묻어두고 왔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여관에서 많은 것들을 물어보지만 대답을 망설이는 스즈메에게, 치카는 무언가를 느끼고 이런 말을 합니다.
왠지 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제삼자인 관객의 입장에서야 의자가 되어버린 소타와 스즈메의 여정이 모두 보이고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작중의 인물들은 그걸 알 방도가 없죠.
그 차이에서 오는 안타까움이(이전 작품인 날씨의 아이에서도) 저에겐 크게 다가왔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중요한 일'.
심지어 소타는 이후 '중요한 일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편이 낫다.' 와 같은 말을 하죠.
하지만 이때, 스즈메는 그녀의 말을 듣고 화색이 돌며 이렇게 말합니다.
응! 분명, 엄청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소타를 흘끗 바라봅니다.
그래요, 우리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듯이.
이 때 소타의 마음은 어땠을지...
이후로 계속해서 소타와 함께 뒷문을 닫으러 다녔지만...
이제는 그 소타가 요석이 되어버린 상황.
스즈메가 느꼈을 감정들은, 병원에서의 대사로 감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너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
전혀 두렵지 않아요.
살고 죽는 것은 모두 운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소타 씨가 없는 세상이, 저는 두려워요!
그렇습니다. 스즈메는 너무 일찍,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습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죽음은 두렵지 않다.
어쩌면 스즈메는 누군가에게 삶을 빚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재앙을 함께 막던 소타를 본인의 손으로 꽂고 돌아온 길이었죠.
이 장면은 정말 눈물을 참기가 힘듭니다. 매번...
병원에서의 대화 후, 스즈메는 강한 결의를 가지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관객들이 대부분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캐릭터인 세리자와이기도 하지만,
전 참 좋았습니다.
제가 임용 준비하는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친한 친구가 임용 1차 붙어놓고 2차 시험장에 안 나타나고 행방불명이면 찾으러 갈 거 같은데요?
친구 걱정하는게 뭐 나빠?
별 거 아닌 대사일지도 모르겠지만... 꽤나 강한 울림이었습니다. 제게는.
아, 처음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는 노래가 나와서 굉장히 반갑게 들었습니다.
세리자와는 마냥 신나게 여행길에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 노래지만...
그 사람의 엄마를 만나기 위해
지금 열차에 탔네
다시 볼 때는, 12년만에 어머니를 잃고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스즈메의 처지를 생각하며...
가사가 아프게 다가왔네요.
역시나 익숙한 노래여서 반가웠지만...
찾는 것은 무엇인가요
찾기 어려운 것인가요
누군가는 '다녀올게' 를 들려줄 사람을,
누군가는 '다녀올게' 를 들어줄 사람을 잃었을 재해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스쳐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보고 있자니...
영화가 말하는 바를 생각하며 복잡한 기분이 되었던 노래와 장면들.
그리고 마주하는 마지막 여정...
길고 긴 여정 끝에 소타를 다시 만나며,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듯이,
스크린 너머로,
스즈메의 이 한 마디.
'어서 와요'. (おかえり)
이 한 마디로 영화의 문을 닫습니다.
전 이 영화가 내수용이라는 얘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만서도요. 분명 이해받기 어렵기는 하겠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스즈메의 여정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큼은 보편적인 감정이 아닐까.
상상만 해도 두려운 상실의 감정을,
삶의 의지를,
덧없음을 알더라도 한순간이라도 더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과거를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희망을,
모르지 않을 거라고,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데려간 사람들이 아쉽다고 할 때마다 마음이 꺾일 것 같긴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조금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 경험에 의해 조금은 더 이 작품을 각별하게 맞이했습니다.
한 장소에서 20년을 넘게 살며 변화하는 모습을 봐 온 저에게,
여러 이유로 스러져가는 옛 풍경은 제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뒷문' 은 폐허에 생깁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추억, 삶이 녹아있던,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가 누르고 있었던 장소였지만,
지금과 내일이 끊어진 장소입니다.
항거할 수 없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재난.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 삶을 이어갑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처음 보고 돌아오는 길에 탄 택시를 운행하는 분은
초보 택시 운전사분이셨습니다.
이곳에서 오래 지내셨지만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으신...
제가 사는 곳은 근 10년간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분과 변해버린 고향 땅에 관해 얘기하며
제게 겨우 약간 더 익숙한 길을 가르쳐드리며
아직 저에게도 어색한, 변화한 집 주변을 함께 마주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감사를 표하셨고,
저는 그분께 응원의 말을 전하며 내렸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본 주제와는 크게 관련 없을 일이지만...
어떤 의미, 과거와 단절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버려지는 것, 잊혀지는 것들이 많은 지금,
이를 조금이나마 거스르고 싶은, 제 어린 마음의 투정(子供のわがまま)에서 비롯된 감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뭐 나쁜 건 아니잖아요? 뭐가 나쁜가요? (なにが悪い?)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 꼭 봐주시고.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은 대부분 영화를 보신 분들일테니,
혹시나 한 번 보고 영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면,
부디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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