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 씨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당하는 이야기
* 해당 글은 2019년 11월 경 날씨의 아이 갤러리에 연재했던 팬 소설 연재분을 옮긴 것입니다.
* 블로그 형식을 고려하여 약간의 편집을 가미했습니다.
톡톡톡톡.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간다.
입가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문 앞에 멈춰 스마트폰을 꺼내 라인을 보낸다.
호다카, 지금 집 앞! 천천히 와. 기다리고 있을게.
밝은 표정으로 윙크하는 이모티콘을 더하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전에 호다카에게서 받은 예비 열쇠를 꺼냈다.
호다카와의 재회 후, 스가 씨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받은 스마트폰.
극구 사양했지만 진지한 목소리로 나름의 사과니까 꼭 받아줬으면 한다는 말에, 왜 사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매일 호다카와 연락을 주고받는 요즘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일상이 충만한 행복감에 가득 차 있다.
오늘 학교에 가면서 내일 개교기념일로 학교를 쉰다고 라인을 보냈더니, 호다카도 마침 내일 강의가 없다고 해서 집에 놀러 가도 괜찮은지 물어보니 흔쾌히 수락해줬다.
들뜬 마음으로 달려와 문 앞에 섰는데, 갑자기 긴장이 됐다.
호다카가 없는 호다카의 집에 혼자 들어가려니, 뭔가 결혼한 느낌?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실례하겠습니다~"
들뜬 목소리로 문고리에 열쇠를 넣고 돌린다.
아무도 없어 썰렁했지만, 함께 고른 찻잔이나, 식탁보 같은 것들을 보니 또다시 행복감이 차오르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응, 언제나 함께야. 그렇게 다짐하며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아휴, 호다카도 참."
다시 스마트폰을 열어 라인을 확인하니, 곧 수업이 시작하니까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는 답장이 와 있었다.
또 컵 누들 먹은 거야? 밥 챙겨 먹으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이번엔 허리춤에 손을 얹고 빠직, 하는 마크와 함께 화를 내는 캐릭터의 이모티콘을 더하고 방 안을 정리한다. 보나 마나 아침 챙기기 귀찮아서 또 이랬겠지. 저녁은 제대로 밥 먹이겠어!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 * * *
"흐흥~ 호다카, 뭐 숨겨놓은 건 없으려나?"
정리 끝, 요리 준비 끝! 호다카가 돌아오려면 아직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그사이 혹시나 냉장고 옆 등 구석진 공간을 슬쩍 확인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아ㅡ 뭐랄까 한창일 나이 아닌가... 나기도 그렇고 다들 너무 착실하다니깐.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잘 때 사용하는 매트가 접혀있었다. 그 위에 대충 누워 스마트폰을 꺼낸다.
뭘 하며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던 차에 유튜브를 켰다.
가끔 요리 영상이나 공부 영상 등을 보는 데 사용했는데, 추천 영상에 처음 보는 이상한 게 떠 있었다.
『철로 역주행! 급변한 날씨에 정신이...?』 조회수 331만회 · 3년 전
"으음...? 이게 뭐지?"
왜 그게 내 유튜브 메인에 올라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에 홀리듯 눌렀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에에엑? 호다카?!"
그 영상은, 어떤 소년이 철로 위를 달리는 것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저 사람 뭐야?"
"미친 거 아니야?"
"날씨 때문에 돌았나?"
영상에는 촬영한 사람 주변에서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잔뜩 녹음되어 있었다.
그리고 철로를 따라 처절하게 뛰어가는 한 소년이 찍혀 있었다.
약간 시간이 지나자 촬영자가 확대했는지 달리는 인물이 커졌다.
내 눈에 익숙한 머리와 흰색 티,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약간 작은 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쳤는지 잠시 무릎을 부여잡고 크게 헐떡이더니, 곧이어 다시 달려간다.
"호다카가 분명해."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그것으로 영상은 끝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저 옷이었는데..."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때, 처음 보았던 소년.
흰 티를 입은 채 컵 수프를 하나 시키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영상이 올라온 건, 3년 전 그날.
호다카와 함께, 하늘 위에서 내려온 그날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자세를 고쳐 앉은 뒤 영상을 다시 한 번 돌려봤다.
다시.
한번 더.
다시 보고 또 볼수록 확실해졌다.
"호다카가 맞아..."
영상은 30초 남짓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조회 수와 댓글은 엄청나게 많았다.
손을 위로 올려 페이지를 아래로 내리자 댓글이 보였다.
날씨가 돌아오더니 사람이 맛이 갔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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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되게 열심히 뛰네요. 왠지 웃겨
👍︎ 2천 👎︎ 답글
저거 위법 아니에요? 경찰은 뭐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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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호다카가 왜? 아니, 무슨 일이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의문점들.
그러다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때린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그날 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하늘 위에서 호다카를 만나고, 눈을 떠보니 경찰서였다.
'호다카, 넌 대체 어떻게 내 앞에 온 거니?'
호다카는 이미 끌려가서 볼 수 없었고, 스가 씨와 나츠미 씨와 함께 있었다. 나기도.
호다카가 날 데리러 왔어ㅡ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어째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야?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다시 학교에 가고, 스가 씨와 나츠미 씨의 조사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나기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동상담소에 가서 면담과 협상과....
퉁탕 퉁탕.
발걸음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다급한 듯 큰 소리가 났다. 문 앞에서 멈춘다. 호다카인가?
문고리가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헥, 헥, 헥.... 히나, 다녀왔어! 오래 기다렸어?"
"......."
나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로 멍하니ㅡ 아.
"아.... 호다카..."
어디서부터 뛰어온 걸까? 호다카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가방을 내려놓고 있었다.
헐떡이는 호다카의 모습이, 아까 그 영상과 겹쳐 보였다. 확실... 하네.
"하아, 후우.... 휴, 그, 히나가, 후, 보고 싶어서...으앗! 라인 보냈었네? 으.... 미안! 아침에 늦잠 자서...."
그러고선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라인부터 확인했는지 아침의 컵 누들에 사과하고 변명하는 모습.
방금 받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움과 반가움이 차올랐다.
혼란함을 애써 억누르고ㅡ
"호다카."
아뿔싸, 나도 모르게 냉랭한 목소리가 나왔다.
"예... 옙."
어째서?
호다카가 나쁜 게 아니야. 잘못한 게 아니야.
이건 대체 무슨 감정인지.
원망? 아니야. 내가 왜 호다카를 원망하겠어.
소외감? 너무 아이 같잖아. 그런 건 아니야.
배신감? 도대체 호다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하지만 생각할수록 몸이 떨려오고 가슴속에 무언가 응어리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호다카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돼.
당황한 듯 정좌한 채 앉아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호다카를 보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히....히나? 무슨 일..."
"호다카. 따라와. 지금 가야 할 곳이 있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팔을 붙잡은 채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
터벅터벅 걸어서 수상버스에 올라탄 뒤 생각에 잠겼다. 왠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강의를 너무 열심히 들었나 싶기도 하고,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아차. 아침 대충 먹고 정리를 안 하고 나왔구나. 집 근처 역에 내렸다. 빨리 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빌라에 도착하자 마음이 더욱 급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뛰고 있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을 연다.
"헥, 헥, 헥... 히나 씨! 다녀왔어. 오래 기다렸지?"
하지만 날 기다리고 있던 건,
"호다카."
차가운 목소리로 날 부른 뒤 어디론가 끌고 가는 히나 씨였다.
* * * *
다짜고짜 끌고 가더니, 택시를 불러 세우곤 나를 태웠다. 히나 씨는 나를 뒤따라 탄 뒤, 스가 씨의 집 주소를 말하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기? 나야. 택시비 줄 테니까, 지금 당장 스가 씨 집으로 와."
뚝.
칼바람이 부는 것처럼 차가운, 그렇지만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나기 선배를 불렀다.
할 말만 하고 끊다니, 이런 적이 있었던가? 아침에 컵 누들 먹은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나?
아니면 라인 확인 안 해서?
내가 뭘 잘못했나?
아냐. 그럼 나기는 왜 부르고, 스가 씨네 집으로 갈 건 또 뭐란 말인가.
이건 애매하다. 애초에 화가 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습의 히나 씨는 처음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그러고는 또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츠미 언니, 사무소에요? 응, 잘 됐네. 할 얘기가 있어요. 갈 테니까 기다려요."
에엣? 지금? 전화기 너머로 당황한 듯한 나츠미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히나 씨는 또다시 이따 봬요. 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화났어요? 라고 물어보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저기... 히나... 씨..."
"응."
"왜 스가 씨 집으로 가는 건가요?"
"......다 같이, 할 얘기가 있어."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잔뜩 겁을 먹어, 스가 씨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리 전화하고 와서인지 도착하자마자 나츠미 씨가 나와서 우리를 반겨줬다.
자주 만나는 사이라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 다만 히나 씨가 걱정됐는지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어서 오렴. 히나, 호다카! 무슨... 일이야?"
"아... 안녕하세요."
"..."
히나 씨는 말없이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츠미 씨가 나에게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지만, 나도 알 도리가 없어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 나기 선배도 곧 올 거에요."
"응?....나기까지? 오늘 무슨 날인가?"
"그.......글쎄요. 나츠미 씨, 제가 뭐 잘못했나요?"
흐응~ 하면서 잠시 고민하던 나츠미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거라면 굳이 여기에 올 것도 아니지. 호다카, 너네 집에서 온 거 아냐?"
"그건 그런데요...."
"하긴 뭐, 짐작 가는 바가 없었겠지. 일단 들어가자."
* * * *
"여어. 무슨 일이야? 온다고는 들었는데. 빨리도 왔네."
사무소는 꽤 커져서, 작업용 공간 외에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이 붙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옆의 책상에는 맥주 캔이 서너 개 놓여있었고, 최근에 식사라도 한 것인지 빈 접시와 컵이 놓여 있었다.
스가 씨는 소파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맥주 한 캔을 손에 쥔 채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채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리 사이에서 엄청난 크기의 아메가 누워서 한쪽 눈을 치켜뜨더니 꼬리를 한번 살랑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웃음이 나왔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스가 씨도 알고 있었을까?
"할 얘기가 있어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스가 씨가 눈을 찡그리고선 다리를 오므렸다.
아메는 귀찮은 듯 무릎에 발을 올리고 옆으로 넘어가 다시 누웠다.
뒤따라 들어온 호다카와 나츠미 언니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기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걸리겠지.
나는 먼저 운을 뗐다.
"3년 전에, 다들 경찰한테 신세를 졌었죠."
"으음? 아아, 괜찮다니깐. 모카랑도 요즘은..."
평소에 스가 씨가 표출했던, 그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미안함 때문인지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는 듯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전 알고 싶어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음."
스가 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츠미 언니도, 호다카도.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엔 정신이 없었죠. 다들. 스가 씨도 필사적이었고, 나츠미 언니도.
호다카랑은 바로 떨어지는 바람에 얼굴도 못 봤고요. 전 아동보호소랑 상담하고, 경찰이랑 얘기하고, 증언에 협상에.
나기와 함께 살기 위해서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런데, 저는 몰라요."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예의 없이 굴 일은 아니잖아.
이렇게까지 급하게 올 일은 아니잖아. 호다카한테도 너무했어.
나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한번 들기 시작한 의심과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렇게는 싫어.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고 호다카를 바라보았다. 머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내게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
당신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가요.
"호다, 흑, 읍... 카. 이거!"
눈물이 차올라서, 순간 말이 막혔지만, 스마트폰을 내밀면서 외쳤다.
"대체, 뭐야? 그날, 히끅. 무슨 일이, 흑, 있었던, 거야?"
"에, 이건...."
"뭐...."
"어머."
다들 놀랐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주 잠깐의 정적.
왜일까. 왜 눈물이 나려는 걸까.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만 모르는 건 싫어.
호다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알려줘,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을 텐데, 왜 나는 알려고 하지 않은 거야,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말라고ㅡ
울먹거리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끝에 나는,
"흐윽....흐아아아앙!"
호다카에게 달라붙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 팔로 그의 가슴을 마구 때렸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콩콩, 건드리는 수준이었지만.
'바보. 왜 아무 말도 안해줬냐구.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숨기지 말아 줘. 내게 말해줘.
이런 거에 속상해하는 내가 싫다구. 호다카 미워, 바보...'
그 상태로 울먹이며 되는대로 내뱉었다. 호다카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언제나 따뜻하고 안심이 되는 그의 품 안.
힘이 빠진다. 축 늘어져 안겼다.
곧이어 스가 씨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말했다.
"저게 대체 뭐냐, 호다카?"
"이건, 그...."
"호다카, 내가 얘기할게."
나츠미 언니가 그렇게 말하자, 호다카는 나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뭔가, 굉장히 안심이 됐다.
그대로 2분 정도 있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남들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치만, 그치만....
"일단 많이 놀랐을 텐데. 미안해, 히나."
"어이, 청년. 설마 그때 철도교통법인가 뭔가 붙었던 게 저거?"
"네, 네에...."
쾅!
그 때, 문이 세차게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나기였다.
나기와 눈이 마주쳤다. 내 눈을 보더니 당황했는지 잠깐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호다카를 째려보고 외쳤다.
"호다카! 너어....."
"아, 아니, 아니아니아니. 선배! 그런 거 아냐!"
* * * *
나기 선배가 들어오고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나의 격렬한 해명과 심각한 분위기에 곧 잠잠해졌다.
곧이어 나츠미 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에ㅡ 난 나기한테 연락을 받고 스쿠터를 끌고 이케부쿠로 역 근처 경찰서로 갔지.
가보니까 호다카가 경찰한테 쫓기고 있지 뭐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글쎄, 히나 널 찾으러 가야 한다지 뭐야! 호다카 너무 멋있었지~ 그래서 그래서, 완전 추격전이었다니깐.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뒤따라오는데 정말이지..."
주절주절 이야기하더니 텐션이 올라가버린 나츠미 씨.
심각한 분위기였지만, 히나 씨는 나에게 완전히 매달리듯 엉겨 붙어서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기도 나의... 약간은 엉성한 추격전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인지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며 경청하고 있었다.
스가 씨는 이미 나츠미 씨에게 들었던 듯 귀를 후비적거리고 툭툭 털더니 이야기를 안주 삼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멋지게 따돌렸는데 말이지. 요요기까지 거의 다 갔는데 도로가 침수돼있지 뭐야.
그래서 거기서부턴 나도 몰라. 그 뒤에 경찰에 자수했거든. 엄청 혼났어~ 리젠트 머리의 형사가..."
"어허. 거 참. 여긴 지금 호다카 청문회니까 그만해, 그만."
"어라 케이쨩. 책임은 우리 모두한테 있다구?"
"뭐가 됐든. 거기부턴 호다카밖에 모르는 이야기잖아? 저 영상, 뭐냐? 재밌던데. 으하하."
히나 씨가 진정하고 나서 잠깐 영상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주변 사람들의 적나라한 반응을 그대로 확인한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당시엔 정말로 필사적이었으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이렇게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었다니...
뭔가 부끄럽고 기분이 묘했다.
"호다카, 훌쩍. 얘기해 줘."
"아, 응. 그러니까, 길이 없었어요. 헤엄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침 옆에 트럭이 있었거든요.
올라가서 철조망을 타고 넘어갔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호다카. 그때 다치지 않았어?"
"아, 그랬었죠....."
무의식중에 왼쪽 뺨에 남은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그때, 철조망을 넘으면서 볼을 긁혔다.
바로 치료하지 못한 채 요요기의 폐건물까지 달리고, 경찰과 대치하고, 토리이를 통과해ㅡ
내 옆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뺨의 상처를 바라보고 있는,
누구와도,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을 데려왔었다.
"그냥, 정신없이 달렸어요. 히나 씨에게 내가 괜한 일을 시켰구나 싶고, 미안하고, 보고 싶어서.
어떻게든 찾고 싶어서 계속 달렸어요. 누가 보고 있는 줄도 몰랐네요. 아픈 줄도 몰랐고."
"어머, 어머. 아~ 나는 호다카같은 남자 어디 안 나타나나 싶어~"
그 말을 들은 히나 씨가 입을 삐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뭘까, 이 귀여운 생물은.
의외의 모습이지만 이런 모습도 가끔은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츠미 씨가 푸훗, 웃으면서 다가와 우리 둘을 꼭 끌어안았다.
"고생 많았구나, 호다카도. 히나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정말."
"아...."
쾌활한 듯 보였지만, 얼마나 많이 걱정했었는지, 그리고 우리를 얼마나 아껴주는지 느껴졌다.
히나 씨는 멈췄던 눈물을 다시 흘렸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3년 전의 감정들이 다시 밀려오는 듯했다. 상실감, 슬픔, 분노, 억울함, 고마움, 미안함... 그런 것들이 뒤섞여갔다.
스가 씨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천장을 쳐다봤고, 나기 선배도 훌쩍이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바다가 되자 나츠미 씨가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섰지만, 끝내 본인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ㅡ 다 큰 애들이 울기나 하고..."
라고 말하는 스가 씨의 눈도 빨개져있었다. 맥주를 벌컥, 들이키더니 다 마신 듯 캔을 흔들다가 별안간.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호다카 저 녀석 때문에 말아야, 어? 나한테 총을..."
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말을 멈추고선 우울한 표정으로 잠시 있다가, 눈물을 흘리고 마는 스가 씨.
그때 스가 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젠장, 이것들이 진짜, 다자고짜 찾아와서는...크읍, 큭...."
생각해보면 스가 씨의 모든 행동들도, 나를 위한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말이다.
경찰들한테서 도망쳐서 나를 데려가러 폐건물까지 오고, 설득하려 하고. 마지막엔 결국 형사들이랑 주먹다짐까지 했으니.
* * * *
잠시 눈물바다가 됐던 공간은 애써 눈물을 멈추고 '어쨌든 다들 여기에 무사히 있으니까!' 라고 외친 나츠미 언니에 의해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나...
"호다카를?!"
"호다카를요?!"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쳐버렸다. 어라, 한 사람 더... 나츠미 언니였다.
폐건물에서 있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던 도중, 스가 씨와 투닥이던 호다카를 걷어찬 이야기가 나오자 나츠미 언니와 함께 스가 씨를 째려봤다.
호다카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숙여대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호다카를!
"아니, 저 녀석이 내 팔을 물었다니까. 글쎄, 그렇게 봐도 말야. 크흠..."
"너무해요!"
"너무해, 케이쨩!"
"아, 아. 그러고 보니까 그때 나기도 왔었지. 옷도 참 이상하게 입었던데..."
이 사람,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궁금했다.
나기는 어떻게 아동보호소에서 그 폐건물로 간 걸까? 모두의 시선이 나기를 향했다.
그리고 나기의 설명을 들은 나는ㅡ
"나기, 최악이야."
"으ㅡ엑. 나기 군, 그렇게 안 봤는데"
나츠미 언니와 함께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누나, 너무해! 어떻게든 나가야만 했다구. 나도 필사적이었어!"
"나기, 최악."
"나기 군, 방법이 퇴폐야."
"그ㅡ러ㅡ니ㅡ까ㅡ!"
허둥거리며 해명하는 나기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여자친구와 전 여자친구를 동시에 부르고, 여장까지 해서 몰래 나오다니.
심지어 전 여자친구를 보호소 안에 두고! 내 동생이지만 정말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시작으로 하나 둘 웃더니, 이번엔 또 웃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으하, 으하하하. 나기 너 이 녀석. 제법인데. 크하하하하..."
스가 씨는 소파 뒤로 넘어갈 것처럼 웃어대셨다.
* * * *
"그래서, 히나? 좀 괜찮아졌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이렇게 예의 없이..."
배웅하러 나와준 나츠미 언니는 으응, 하며 말을 이었다.
"불안했겠지. 히나. 오히려 내가 미안한걸. 얼른 들어가서 쉬어. 다음에 또 보자구."
그렇게 말하며 윙크. 아름답다.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츠미 언니 같은 어른이 돼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나기는 너무 피곤하다며 여기서 자고 간다고 했고, 스가 씨가 흔쾌히 받아주셨다.
'이 발칙한 녀석. 자세히 좀 들어볼까?' 하며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나기를 끌어안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호다카와 밖으로 나왔다.
"택시, 탈까요?"
"으응. 아니, 걷자.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큰 장우산을 펼치며 팔을 뻗는 호다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양 팔로 팔짱을 끼며 바싹 붙었다.
그거 아니? 네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어. 속으로 말을 삼키며 호다카를 본다. 얼굴이 빨개졌다.
아직도 이런 거에 부끄러워하다니.
"호다카."
"네, 네? 히나 씨? 왜 그래요?"
"있지, 언제까지 그렇게 말할 거야?"
아직도 히나 '씨'. 입에 붙어서 그런지 아직도 호칭이 3년 전 그대로다. 오늘이야말로 바꿔야 할 날이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머뭇거리다가, 마음을 다잡고.
"호... 호다카가, 오, 오... 오빠, 잖아."
"......하?"
"하? 라니 뭐야! 정말!"
기껏 용기 내서 말했더니, 뭐야 정말! 바보 호다카.
그렇지만 잠깐의 인지부조화 같은 것이었는지 얼굴이 아까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붉어졌다.
귀여워. 빤히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흉터.
뺨의 흉터가 눈에 들어온다.
미안함과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저기, 호다카."
"예? ...아, 아니. 응."
또다시 존댓말. 내가 째려보자 말투를 고친다. 정말이지 너는. 참을 수가 없어졌다.
"우산, 조금만 기울여 줘."
"응? 왜?"
의문을 표하면서 우산을 살짝 기울였다. 응,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한테 안 보이겠지.
"고마워, 호다카."
그렇게 말하며, 나를 위한 진심의 증거에 입을 맞추었다.